AX 시대를 사는 개발자의 생각 정리 — 에이전트와 일한다는 것
TL;DR
- AX(AI Transformation)는 “AI 도구를 쓴다”가 아니라 일의 단위가 바뀌는 것이다. 나는 이제 코드를 쓰는 시간보다, 에이전트에게 내릴 지시와 검수 기준을 쓰는 시간이 더 길다.
- 에이전트는 부하 직원이 아니라 무한히 복제 가능한 주니어다. 잘 시키면 빠르고, 대충 시키면 대충 낸다. 그래서 실력은 이제 타이핑 속도가 아니라 요구사항을 명세로 바꾸는 능력으로 갈린다.
- 불안은 있다. 다만 “AI가 개발자를 대체하나”보다 더 정확한 질문은 “지시와 검수를 못 하는 개발자가 대척점에 선다“라고 본다.
들어가며
기술 블로그인데 요즘은 기술 얘기보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는 얘기를 더 하고 싶었다. 이유는 단순하다. 내 하루가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.
작년까지만 합핏도 내 업무의 중심은 “내가 직접 짜는 코드”였다. 지금은 다르다. 아침에 칸반을 열고, 에이전트에게 넘길 카드를 쪼개고, 전날 밤 에이전트가 올린 산출물을 검수하고, 애매한 건 되돌리면서 지시를 다듬는다. 코드는 여전히 읽고 쓰지만, 대부분의 첫 드래프트는 에이전트가 쓴다.
이걸 두고 “AI 시대다”라고 한 마디로 말하기엔, 현장에서 느끼는 결은 조금 더 복잡하다. 이 글은 그 복잡함을 정리한 메모다.
1. 에이전트는 도구가 아니라 “복제 가능한 주니어”다
처음에는 Copilot처럼 썼다. 자동완성 잘해주는 도구. 그런데 에이전트를 분리해서 쓰기 시작하면서 — 분석 담당 하나, 구현 담당 하나, 칸반으로 태스크 넘기는 구조로 — 도구가 아니라 조직에 가까워졌다.
중요한 깨달음은 이거다.
에이전트는 똑똑한 시니어가 아니다. 지시서를 그대로 실행하는, 무한히 복제 가능한 주니어다.
주니어에게 일을 시켜본 사람은 안다. “이거 해줘”라고 하면 이상한 게 온다. “입력은 이 형식, 출력은 이 형식, 이 케이스는 이렇게 처리, 완료 조건은 이것”이라고 써 주면 기대한 게 온다. 에이전트는 이 특성이 극단적이다. 명세가 좋으면 시니어보다 빠르고, 명세가 나쁘면 주니어보다 더 이상한 걸 — 그것도 아주 자신 있게 — 낸다.
그래서 내 역할이 바뀌었다. 예전의 나: 설계 → 구현 → 테스트. 지금의 나: 설계 → 명세 → 검수 → 재지시. 구현은 거의 사라졌다.
2. 검수가 새로운 병목이다
에이전트가 코드를 빨리 쓰면 뭐하나. 내가 검수를 못 따라가면 의미가 없다.
실제로 겪은 문제다. 구현 담당 에이전트가 작업을 끝내고 상태를 review-required로 막아 버리는 버릇이 있었다. 규칙 파일에 “block하지 말고 complete 하라”고 이미 적혀 있었는데도 반복됐다. 원인은 규칙 내용이 아니라 규칙의 위치였다. 말투 가이드 뒤에 묻혀 있던 금지 규칙을 파일 맨 위로 올리니 바로 지켜졌다.
이 사건에서 배운 건 두 가지다.
- 에이전트와 일할수록 프로세스 설계가 코드보다 중요해진다. 상태 머신 하나 잘못 두면 파이프라인 전체가 무한 루프를 돈다.
- “잘 시키는 것”만큼 “못 했을 때 알아채는 것“이 핵심 역량이다. grep 한 줄로 스펙과 코드가 어긋났는지 바로 확인하는 습관 — 이게 없으면 에이전트의 산출물은 검증 안 된 부채일 뿐이다.
속도는 에이전트가 주는데, 신뢰는 내가 만들어야 한다. 이 비대칭이 AX 시대 개발자의 실제 노동이다.
3. 그래서 무엇이 남는가
솔직히 불안이 없진 않다. 첫 드래프트를 기계가 쓰는 세상에서 “코드를 잘 짠다”는 프라이드는 점점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.
그래도 몇 가지는 오히려 값어치가 오른다고 본다.
- 도메인을 명세로 번역하는 능력. “사용자가 불편해한다”를 입력 스펙·완료 조건·예외 케이스로 쪼갤 수 있는 사람은 에이전트 시대에 더 귀해진다.
- 검수 기준을 만드는 능력. “좋은 코드”가 아니라 “이 카드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조건”을 정의하는 일. 테스트든 체크리스트든.
-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능력. 사람 둘을 관리하던 감각이 그대로 에이전트 둘을 오케스트레이션하는 감각이 된다. 매니지먼트 경험이 뜬금없이 자산이 됐다.
- 책임지는 능력. 에이전트는 책임을 안 진다. 배포 버튼을 누르고, 장애 나면 새벽에 일어나는 건 아직 사람이다. 이건 꽤 오래 사람 몫일 것이다.
4. 마무리 — 대체가 아니라 이동
“AI가 개발자를 대체할까”라는 질문은 이제 지루하다. 내 관찰로는 대체가 아니라 이동이다. 가치가 “구현”에서 “지시·검수·책임”으로 이동하고 있고, 그 이동을 못 따라가는 개발자가 위험한 거지 개발자라는 직업이 위험한 게 아니다.
나는 아직 적응 중이다. 에이전트가 밤새 써놓은 코드를 아침에 grep으로 검수하면서,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속도로 일하면서,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지막 한 줄은 내 눈으로 확인한다.
이 글도 사실, 초안은 에이전트가 쓰고 내가 고쳤다. 그게 지금 내 일하는 방식이고, 아마 앞으로의 표준이 될 것이다.
이 블로그의 포스트들은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. 내가 방향을 정하고, 에이전트가 초안을 쓰고, 내가 검수한다. 그 과정 자체가 이 글의 주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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